
여수는 3~4번 와도 갈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시입니다. 이번에도 아이들 손을 잡고 다녀 왔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이 많더군요. 낮에 뭘 봐야 할지, 야경은 어디가 진짜인지, 아이와 함께라면 어떤 동선이 맞는지. 제가 직접 다녀본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
해돋이부터 시작하는 여수 낮 여행, 향일암과 오동도
여수 여행의 첫 번째 문제는 "아침에 어디서 시작하느냐"입니다. 저는 주저 없이 향일암을 추천합니다. 금오산 기슭에 자리한 향일암은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 중 하나로, 해돋이 명소로도 손꼽히는 곳입니다. 여기서 관음 기도처란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기도하는 사찰로, 전국에서 영험하기로 이름난 네 곳 중 하나를 말합니다.
계단이 꽤 많아 다리에 자신 없는 분들은 옆길로 우회하는 평탄한 경로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올라가보니, 해수 관음상으로 가는 길목에 좁은 바위틈이 하나 있는데 덩치가 좀 있는 사람은 몸을 낮추고 옆으로 비스듬히 들어가야 합니다. 이 구간에서 아내가 "더 퉁퉁해지면 못 지나가겠다"고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길 곳곳에 불언·불문·불청을 형상화한 아기 동자승 인형들이 서 있는데,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수평선은 말 그대로 눈이 시원해지는 절경이었습니다.
오동도는 향일암과 전혀 다른 결의 매력이 있습니다. 방파제를 15분쯤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저처럼 다리가 아프다면 동백열차를 타는 것이 정답입니다. 편도 1,000원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섬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타봤는데, 이렇게 편하고 낭만적인 이동 수단이 있다는 게 처음엔 좀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이 안 걸어서 너무 행복하다며 좋아했하더군요. 이런 것을 소소한 행복이라고 하는 걸까요? 섬 안쪽 바람골의 기암절벽은 사계절 내내 자연이 만들어낸 조형물을 보는 느낌이고,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다도해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다도해(多島海)란 수많은 섬들이 모여 이루는 해역으로, 여수 앞바다가 대표적인 다도해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입니다.
아이와 함께라면 놓칠 수 없는 아쿠아플라넷 여수
가족 여행에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실내 공간"입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와도 망설임 없이 갈 수 있는 곳, 저는 아쿠아플라넷 여수를 강력히 꼽습니다. 지난번 여수 방문 때 못 갔던 곳이라 이번에는 꼭 가보려고 미리 일정을 잡았습니다.
이곳의 핵심은 단연 벨루가(beluga)입니다. 벨루가란 흰고래의 영어 명칭으로, 전체적으로 새하얀 몸 색깔과 둥글고 귀여운 머리 형태가 특징인 북극해 계열 고래입니다.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종인 만큼 아이들이 수조 앞을 쉽게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저와 아내도 정말 한 참을 보고 있자니 신비롭기까지 했었습니다. 벨루가 외에도 수달, 펭귄, 대형 상어, 바다거북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가로 16m의 메인 수조 앞에서 진행되는 홀로그램 이머시브 쇼는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홀로그램 이머시브 쇼란 3차원 입체 영상을 수조와 결합하여 관람객이 마치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몰입감을 주는 공연 방식입니다. 저도 예상보다 훨씬 스케일이 커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보고 싶을 정도 였습니다.
아쿠아플라넷 방문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연 시간표: 인어쇼, 펭귄·수달 식사 시간, 벨루가 생태 설명 등 시간대별로 다름
- 홀로그램 이머시브 쇼 회차: 하루 2~3회 운영, 사전 확인 필수
- 주차: 엑스포 단지 내 주차장 이용 가능, 주말에는 혼잡
- 입장권: 온라인 사전 예약 시 할인 혜택 있음
공연 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역순으로 동선을 짜면 공연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차게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 날 가장 좋아했던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요트와 거북선, 여수 바다를 몸으로 느끼다
여수 바다를 눈으로만 보는 것과 직접 타고 나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저는 이번에 라마다 호텔 집트랙 대신 낭만 바다 요트를 선택했습니다. 집트랙은 호텔 24층 루프탑에서 출발하는 짚라인 액티비티인데, 솔직히 아래를 내려다보니 겁이 덜컥 나서 포기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너무 타고 싶어 했지만 온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포기했고, 아직도 그 눈빛이 마음에 걸립니다.
대신 요트 주간 투어를 선택한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유탑 마리나 호텔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이 코스는, 오동도 방파제 안쪽의 잔잔한 내해를 지나 탁 트인 외해로 나가는 구성입니다. 내해와 외해의 차이는 꽤 분명한데, 내해(內海)란 방파제나 육지로 둘러싸여 파도가 잔잔한 해역을, 외해(外海)란 방파제 바깥 쪽의 개방된 넓은 바다를 의미합니다. 외해로 나가는 순간 잠시 흔들리는데 그 이후로는 생각보다 안정적이었습니다.
탑승 전에 새우깡을 준비해 가면 요트를 따라오는 갈매기떼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갈매기가 손 가까이까지 날아와 낚아채는 순간이 꽤 짜릿했습니다. 아이들도 원 없이 갈매기를 보며 사진을 찍었고, 해안선의 풍경까지 눈에 담으니 주간 투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순신 광장도 빠질 수 없는 코스입니다. 광장 한가운데 실물 크기로 재현된 거북선 모형이 서 있는데, 내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활용한 돌격형 철갑 전투선으로, 적선에 근접해 충파하는 전술에 특화된 구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여수시 관광 통계에 따르면 이순신 광장은 여수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무료 관광지 중 하나로 집계되고 있습니다(출처: 여수시청 문화관광).
여수 밤바다의 진짜 얼굴, 빅오쇼와 해상 케이블카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밤이 되면 여수는 완전히 다른 도시로 바뀝니다. 그 중심에 빅오쇼가 있습니다. 여수 엑스포 광장에서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 저녁에 열리는 이 공연은 수중 분수, 불꽃, 레이저, 음향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해상 분수쇼입니다. 여기서 해상 분수쇼란 바다 위에 설치된 분수대에서 물을 쏘아 올리며 조명과 음향을 결합해 연출하는 멀티미디어 공연을 뜻합니다. 회당 약 30분이며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서 예약 없이 자유롭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분수 스케일이 생각보다 훨씬 웅장해서 바람 방향에 따라 물안개가 관람객 쪽으로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워지는 공연이었고, 무료라는 게 믿기지 않을 수준이었습니다.
여수 해상 케이블카는 노을 지기 약 20분 전에 탑승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붉게 물드는 수평선과 하나둘 켜지는 도심 야경을 케이블카 위에서 동시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털 캐빈이란 바닥이 강화유리로 제작된 투명 곤돌라로, 발아래로 여수 앞바다가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일반 캐빈과 크리스털 캐빈 중 선택할 수 있으니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됩니다. 탑승장은 돌산 쪽을 권합니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더라도 돌산 탑승장 옥상에서 거북선 대교 야경을 무료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여수 해상 케이블카는 국내 대표 야경 관광지 중 하나로 꾸준히 선정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낭만 포차 거리에서 거북선 대교 조명을 바라보며 마무리하는 여수의 밤은, 몇 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 풍경입니다.
대구에서 평생을 살아온 입장에서 여수는 올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도시입니다. 역사, 자연, 먹거리, 아이와 함께하는 추억까지 한꺼번에 챙길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백점 만점에 99점은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5월, 아직 덥지 않고 바람 좋은 지금이 여수를 떠날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