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서부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관광지만 도는 여행은 왠지 아쉽고, 그렇다고 어디가 진짜 가볼 만한 곳인지 감이 잘 안 잡혔습니다. 직접 다녀와 보니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코스, 생각보다 훨씬 알차고 층위가 깊었습니다. 다음에는 아이들과 꼭 다시 한번 더 오고 싶는 곳이었습니다.
후버타워에서 본 스탠퍼드, 올라가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위치한 사립 연구중심 대학으로, 캠퍼스 면적이 8,000에이커(약 32㎢)를 넘습니다. 여기서 에이커(acre)란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토지 면적 단위로, 1에이커는 약 4,047㎡에 해당합니다. 쉽게 말해 서울 여의도 면적의 열 배가 넘는 규모가 대학 하나에 펼쳐져 있는 셈입니다. 캠퍼스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도시 안에 또 다른 도시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탠퍼드의 모든 건물은 붉은 지붕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이는 캠퍼스의 시각적 통일성을 의도적으로 설계한 결과인데, 건축 분야에서는 이런 방식을 마스터플랜(Master Plan)이라고 부릅니다. 마스터플랜이란 건물 하나하나를 개별로 짓는 것이 아니라, 전체 캠퍼스의 디자인 언어와 배치를 미리 설계해두는 도시계획 방법론입니다. 그 덕분에 스탠퍼드는 어느 방향에서 찍어도 사진이 그냥 나옵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메인 쿼드(Main Quad)를 통과하는 아치형 회랑, 즉 아케이드(arcade) 복도 하나하나가 전부 포토존이었습니다.
스탠퍼드 기념 교회(Stanford Memorial Church)는 1903년 완공된 건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결합된 구조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란 11~12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건축 스타일로, 두꺼운 벽체와 반원형 아치가 특징입니다.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햇빛과 만나는 순간의 색감은 솔직히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들어가서 잠깐 앉아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후버 타워(Hoover Tower)는 캠퍼스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전망대 높이 65m(13층 해당)에서 캠퍼스 전체를 360도로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1인당 8달러이며 신용카드·직불카드 결제만 가능합니다. 제가 직접 올라가 봤는데, 한 가지 미리 알고 가시면 좋을 점이 있습니다.
후버 타워 방문 전 꼭 확인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오후 4시 이후 도착하면 1층 후버 전시관은 입장이 불가합니다. 저는 늦게 도착해 전시관을 통째로 못 봤는데, 지금도 아쉽습니다.
- 셀카봉과 큰 가방은 반입이 금지됩니다. 전망대 철조망 때문에 셀카 촬영은 어차피 잘 안 나옵니다. 카메라를 철조망에 바짝 붙이면 경치 사진은 충분히 담을 수 있습니다.
- 안내 직원들이 대부분 고령자 분들입니다. 처음에는 좀 의아했는데,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방식이 사회 참여 모델로서 굉장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탠퍼드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에서 출발하면 두 가지 동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경로를 택하든 후버 타워와 메인 쿼드를 거치는 흐름은 비슷하니, 시간 여유가 있다면 기념품 숍도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볼펜 몇 자루를 골라 한국 친구들 선물로 챙겼는데,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미국 대학 캠퍼스의 학생들이 학교 로고 옷을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는 문화가 여기서 비롯된다는 것도 실제로 와서야 실감했습니다(출처: Stanford University 공식 사이트).
애플 파크 방문자 센터와 구글 본사, 기대보다 더 재미있는 이유
애플 파크 방문자 센터(Apple Park Visitor Center)는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의 공식 대외 공간입니다. 애플 파크(Apple Park)란 2017년 완공된 애플의 신사옥으로, 약 71만㎡ 부지에 원형으로 설계된 스페이스쉽(Spaceship) 캠퍼스입니다. 일반 방문객은 본사 건물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방문자 센터에서만 체험이 가능합니다.
방문자 센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증강 현실(AR, Augmented Reality) 체험 공간이었습니다. 증강 현실이란 현실 공간 위에 디지털 정보를 겹쳐서 보여주는 기술로, 방문자 센터에서는 비치된 아이패드를 통해 애플 파크 내부를 3D 모델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들어갈 수 없는 구내식당과 건물 내부를 이렇게라도 들여다볼 수 있으니 대리만족이 충분했습니다. 그 외에도 애플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 티셔츠, 텀블러 등 공식 굿즈를 판매하며, 2층 야외 공간에서 실리콘밸리 전경을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주차는 무료이니 렌터카 여행자라면 부담이 없습니다.
구글 본사(Googleplex)는 마운틴뷰(Mountain View)에 위치해 있으며, 방문자 체험 공간인 구글 비지터 익스피리언스(Google Visitor Experience)에서 다양한 구글 제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주차장인 Alta Garage에서 체험 센터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거리인데, 걷는 동안 캠퍼스 곳곳에 무료 자전거가 비치되어 있어 직원들이 자전거로 오가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주차장을 일부러 멀리 만들어서 캠퍼스를 걸어서 통과하게 유도한 구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650m 간격으로 이정표와 지도가 설치되어 있고 QR 코드로 온라인 길 찾기도 가능하니 길을 잃을 걱정은 없습니다.
구글 굿즈 숍에서는 안드로이드 마스코트 인형 18달러, 구글 머그컵 15달러, 모자와 한정판 티셔츠가 각 25달러에 판매됩니다. 예상보다 가격이 합리적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구글 머그컵이 가장 실용적인 기념품이었습니다.
마운틴뷰 파머스 마켓, 예상 밖의 재미가 있어요
마운틴뷰 파머스 마켓(Mountain View Farmers' Market)은 연간 운영되는 지역 농산물 직거래 장터로, 주 1회 열립니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란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장터로,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제가 방문한 날에는 마침 주키니 카레이싱(Zucchini Car Racing) 행사가 열렸습니다. 애호박에 바퀴를 달아 직접 만든 자동차로 경주를 하는 이 이벤트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특별 행사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애호박 자동차를 꾸미고 경주를 지켜보는 장면이 이렇게 따뜻하고 재미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천도복숭아와 딸기 시식, 피칸파이 구입까지 마무리하니 배도 마음도 든든했습니다. 미국 농부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규모의 농업이 이런 장터를 통해 소비자와 연결된다는 구조가 새삼 인상적이었습니다(출처: Mountain View Farmers' Market 공식 사이트).
저녁 식사는 샌프란시스코 대표 수제버거 브랜드인 슈퍼 더퍼 버거(Super Duper Burgers)에서 마무리했습니다. 가이드가 "사랑하지 않는 자녀에겐 그냥 버거를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수제버거를 먹인다"고 했을 때 농담인 줄 알았는데, 갈릭 프라이를 한 입 먹고 나서는 그 말이 이해됐습니다. 인앤아웃 버거보다 가격은 올라가지만, 고기 맛의 깊이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IT 기업, 그리고 지역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곳입니다. 스탠퍼드 역사와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의 배경을 조금만 공부하고 간다면, 같은 장소를 보면서도 훨씬 많은 것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날씨도 쾌적하고 안전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라 가족 여행지로도 무난합니다. 다음에 미국 서부 일정을 짜실 때, 이 코스를 반나절~하루 일정으로 넣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