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에 가면 성심당이라는 공식, 진짜 의심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도 대전 하면 튀김소보로, 부추빵 생각이 제일 먼저 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빵택시를 타고 대전 빵집 일곱 군데를 돌아보고 나서야, 성심당은 대전 빵 문화의 시작점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대전이 이 정도로 빵에 진심인 도시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빵투어 오마카세, 기사님이 곧 가이드였습니다
빵택시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쉽게 말해 여행 오마카세(omakase)와 택시를 결합한 서비스입니다. 오마카세란 일본어로 "맡긴다"는 뜻으로, 메뉴를 손님이 고르는 게 아니라 장인이 전적으로 구성해주는 방식입니다. 이 빵택시에서는 기사님이 코스를 짜고, 빵집마다 추천 메뉴를 안내하고, 심지어 촬영 허가까지 사전에 받아두셨습니다.
제가 직접 탑승해보니, 이분은 단순한 기사가 아니셨습니다. 여행사 상품 기획자 출신에 국내 여행 인솔자 자격증까지 보유하신 분이었습니다. 여행 인솔자(Tour Conductor)란 여행 일정 전반을 책임지고 동행하는 자격증 소지 전문 인력을 뜻하는데, 그 경력이 택시 운행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났습니다. 차 안에는 이즈니 버터와 딸기잼이 준비돼 있었고, 접이식 트레이와 물티슈까지 갖춰져 있어 택시 안에서 빵을 먹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이 빵투어에서 인상 깊었던 코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영춘 모찌: 올 영(永), 봄 춘(春)에서 따온 이름. 찹쌀 반죽이 냉장 보관 후에도 딱딱해지지 않는 것이 특징
- 파이가든: 대전 시민이 빵 퀄리티 1위로 꼽는 곳. 크렘 수아(크림을 넣은 시트 페이스트리)가 대표 메뉴
- 성심당 롯데점: 본점보다 쾌적하고 공정(工程) 전 과정이 통유리로 공개되어 있어 베이킹 공정 투명성이 높음
- 나음집: 앉은뱅이밀(재래종 우리밀)로만 빵을 만드는 곳. 식빵 기준 수입밀 대비 원가가 두 배 이상
- 홀리버터 베이크샵: 고려대학교 수학과 통계학 전공자가 창업한 소금빵 전문점. 현재 매장 세 곳 운영 중
- 연이가: 1인 운영 소규모 베이커리. 대전 시민이 뽑은 빵집 공동 2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빵집 여러 곳을 도는 투어라면 어딘가 겹치는 스타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섯 군데 빵집이 캐릭터가 하나도 안 겹쳤습니다. 달콤한 페이스트리류, 발효 식사빵, 우리밀 건강빵, 힙한 소금빵까지 스펙트럼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도 빵을 엄청 좋아하는 빵러버는 아니지만 빵집을 투어할 수 있고 다양한 빵을 먹으며 각각의 집마다의 특징과 스토리를 들으니 이것은 그냥 맛집 투어가 아니라 재미있고 맛난 문화관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전은 성심당이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들
대전의 베이커리 산업은 생각보다 저변이 넓습니다. 빵택시 기사님이 직접 조사한 추천 빵집 리스트가 30곳에 달했는데, 이 숫자 하나만 봐도 대전이 단순히 성심당 하나로 먹고사는 도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국내 베이커리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5조 원을 넘어섰으며, 지역 특색 있는 소규모 베이커리(로컬 아티장 베이커리)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아티장 베이커리(Artisan Bakery)란 산업 설비 대신 장인이 소량 수작업으로 빵을 만드는 방식을 말합니다. 대전에서 만난 빵집 대부분이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고, 그중 나음집은 앉은뱅이밀이라는 토종 밀 품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앉은뱅이밀은 키가 작고 병충해에 강한 우리 재래종 밀인데, 제가 직접 먹어보니 수입 밀로 만든 빵과는 조직감(크럼 구조)이 달랐습니다. 크럼(Crumb)이란 빵의 내부 구멍 구조를 가리키는 제빵 용어로, 발효 시간과 밀 품종에 따라 크럼의 탄성과 질감이 크게 달라집니다. 나음집 발효빵은 크럼이 촘촘하면서도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오는 구조였는데, 이 퀄리티라면 서울에 있어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리버터 베이크샵에서 먹은 크랙 소금빵도 제 경험상 한국에서 먹어본 소금빵 중 식감이 가장 선명했습니다. 말돈 소금(Maldon Salt)을 올려 구운 소금빵은 겉면을 깨물 때 바사삭하는 소리가 울릴 정도였는데, 이 말돈 소금이란 영국 에식스주에서 생산되는 플레이크 형태의 천일염으로, 입자가 납작하고 짠맛이 예리해 제빵에서 마감 소금(finishing salt)으로 애용됩니다. 이 정도 디테일을 갖춘 소금빵을 대전에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성심당을 기준으로 대전 빵 수준을 판단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프레임이 조금 아깝다고 봅니다. 성심당은 상징이지만, 대전의 빵 생태계는 이미 성심당을 넘어 독자적인 레이어를 쌓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소규모 베이커리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임대료 관리가 핵심인데, 빵택시 기사님이 추천 가게를 선정할 때 임대료 수준까지 먼저 확인하신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맛집 추천을 넘어 가게의 생존 가능성까지 고려한 큐레이션이라는 점에서, 국내 여행 업계 전반에서도 참고할 만한 방식이라고 봅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대구에서 이런 빵택시가 생기면 어떨까? 내가 한번 해 볼까?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제 결론은 "하지 않겠다"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걸 제대로 하려면 빵 공부, 가게 리서치, 섭외, 촬영 협조, 코스 설계까지 전부 해야 하는데, 그게 결코 취미 수준의 일이 아니라는 걸 이번 투어에서 명확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이걸 할 수 있는 건, 20년 전 일본의 우동 택시를 보고 10년 이상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전 빵투어를 계획하신다면 성심당 본점보다 롯데점을 먼저 추천드립니다. 본점의 상징성을 경험하고 싶다면 물론 본점이지만, 쾌적하게 빵을 고르고 제조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롯데점이 훨씬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빵택시 예약에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 한 번 타본 분들이 왜 예약이 꽉 찬다고 하는지, 직접 타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