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구미는 처음 가는 분들에게 낯선 여행지입니다. 공단 도시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관광지로는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죠. 그런데 직접 가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구미역 하나를 중심으로 골목 카페, 호수 산책길, 그리고 제대로 된 산행까지 하루 이틀 안에 전부 가능한 도시였습니다.
공단 도시에서 골목 여행지로, 금리단길의 변화
저는 대구와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구미를 꽤 자주 오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구미역 주변은 딱히 걸을 이유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금리단길이 조성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금리단길이란 구미역 도보 5분 거리에 형성된 로컬 상권 골목을 말하는데, 빈집을 리모델링한 소품숍, 독립책방, 체험 공방,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지금은 서울 망원동을 연상시킬 만한 거리가 됐습니다.
제가 직접 카페투어를 해봤는데 커피 퀄리티가 꽤 수준급이었습니다. 이른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를 지향하는 곳들이 눈에 띄었는데, 스페셜티 커피란 생두의 원산지와 품종, 가공 방식까지 추적 가능한 고품질 원두를 사용하는 커피를 의미합니다. 서울 유명 카페에서나 볼 법한 방식이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금리단길에는 1호 마을 호텔인 각산마을 호텔도 있습니다. TV 없이 책과 사색으로 시간을 보내는 슬로우 라이프(slow life) 콘셉트가 인상적이었는데, 슬로우 라이프란 빠른 소비와 속도에서 벗어나 느리고 여유로운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말합니다. 옥상에서 금오산을 올려다보며 밤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물 이유가 됩니다.
구미시의 경제 구조는 잘 알려진 대로 대기업 제조업 중심이었습니다. 삼성, LG 등 대형 공장들이 빠져나가면서 지역 경기가 흔들렸고, 이에 따라 구미시는 관광과 로컬 콘텐츠 중심으로 도시 재생을 추진해왔습니다. 실제로 구미시는 원도심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금리단길 조성을 지원했으며, 이는 지역 경제 다각화 정책의 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구미시청).
금오지 올레길,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
구미역에서 금오천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벚꽃 시즌에는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집니다. 제가 봄에 갔을 때 만개한 벚꽃이 천변 따라 늘어서 있는 모습은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풍경이었습니다. 금오천 끝에 다다르면 자연스럽게 금오지 올레길로 연결됩니다.
금오지 올레길은 해발 976m 금오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든 저수지, 금오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입니다. 총 거리 약 2.4km로 40분 안팎이면 완주할 수 있습니다. 흙길, 데크(deck) 구간, 부교(浮橋), 와치교 등 걷는 구간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부교란 물 위에 배나 뗏목을 연결해 만든 다리를 뜻하며 발 아래로 물이 출렁이는 느낌이 꽤 독특합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정자 금오정에서 잠시 멈춰 주변을 내려다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금오지 올레길의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총 거리 약 2.4km, 소요 시간 40분 내외로 가볍게 걷기 좋음
- 흙길·데크길·부교·와치교 등 다양한 구간이 번갈아 나와 단조롭지 않음
- 금오정 정자에서 호수 전망 감상 가능
- 금오천을 따라 식당, 카페가 많아 식사 걱정 없음
- 봄 벚꽃 시즌과 가을 단풍철에 특히 방문 추천
금오산 등산, 겨울에 오르면 전혀 다른 산이 됩니다
저는 금오산을 매년 겨울마다 오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대혜폭포가 꽁꽁 얼어붙어 만들어내는 빙폭(氷瀑), 즉 얼어붙은 폭포의 장관 때문입니다. 빙폭이란 낙차 있는 물줄기가 영하의 기온에 얼어 생성되는 자연 현상으로, 겨울 산행의 백미로 꼽힙니다. 여름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도 좋지만, 얼어붙은 폭포 앞에 서면 말 그대로 감탄이 나옵니다.
다만 겨울 금오산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등산화에 아이젠(Eisen)을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아이젠이란 빙판이나 눈길에서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등산화 바닥에 덧대는 금속 발톱 장비를 말합니다. 미끄러운 운동화나 일반 신발로 오르는 분들을 가끔 보는데 솔직히 아찔합니다. 안전 장비 없이는 도선굴 가는 암벽 계단 구간이 특히 위험합니다.
봄·여름 코스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제2주차장에서 출발해 도선굴과 대혜폭포를 거쳐 정상인 현월봉(해발 976m)까지 오르는 코스는 약 10km, 휴식 포함 6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아이들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수준이지만, 정상 직전 돌길 구간은 등산 스틱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구미시 전경은 파노라마 그 자체입니다. 실제로 오른 분들만 아는 풍경입니다.
금오산은 1970년 도립공원(道立公園)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입니다. 도립공원이란 국립공원 다음 등급으로, 광역자치단체가 지정·관리하는 자연공원을 의미합니다. 경상북도가 관리하는 이 공원은 자연 생태와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경상북도 문화관광 공식 자료에도 구미 대표 명소로 소개됩니다(출처: 경상북도 문화관광).
하산 후에는 금오천 인근 식당에서 선산 돼지 곱창 전골을 꼭 드셔보시길 권합니다. 구미 선산 지역 특산 음식으로, 국물이 끓으면 김치를 덮고 한 번 더 끓여 먹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에 밥까지 볶아 먹으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맛입니다.
구미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덜 붐비고, 그래서 오히려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도시입니다. 구미역 하나만 기억하면 금리단길, 금오지 올레길, 금오산까지 모두 연결됩니다. 봄 벚꽃 시즌이나 겨울 빙폭 시즌에 뚜벅이로 한 번 다녀오시길 권합니다. 한 번 가면 또 오게 되는 곳이라는 걸, 저는 매년 겨울 금오산에 오르면서 이미 증명하고 있습니다.